좋은 음악은 선택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음악을 듣지만, 정작 그보다 훨씬 많은 음악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듣는 음악은 ‘좋아서’ 선택된 것일까, 아니면 ‘선택되었기 때문에’ 듣게 된 것일까?
음악을 만들고, 수많은 데모곡이 선택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어려워졌다.
앨범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과정이 존재한다. 특히 아이돌 음악의 경우, 하나의 곡이 선택되기까지 수백 개의 데모곡이 제작되고, 그 중 극히 일부만이 최종적으로 채택된다. 이 과정에서 작곡가들은 단순히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사가 제시하는 방향성과 콘셉트에 맞춰 곡을 제작한다. 예를 들어 특정 앨범이 청량한 분위기를 요구한다면, 그에 맞는 코드 진행과 사운드, 멜로디를 고려해야 하고, 특정 시장을 겨냥한다면 그 시장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반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곡이 선택되는 기준이 단순히 ‘좋다’는 평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획사가 설정한 방향성과 트렌드, 그리고 시장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음악은 좋아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맞기 때문에’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우리가 듣는 음악은 정말 ‘좋은 음악’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까, 아니면 ‘선택된 음악’이기 때문에 좋은 음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만약 수백 개의 데모곡 중 다른 곡이 선택되었고, 동일한 마케팅과 노출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음악을 ‘좋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음악이 소비되는 구조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접하는 음악은 수많은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결과이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사라졌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음악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음악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그 음악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익숙한 것에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음악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큰 인상을 주지 못했던 곡이라도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점차 익숙해지고, 그 과정에서 ‘좋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음악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곡이 어느 순간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특정 음악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곧 선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자발적인 취향의 결과일까, 아니면 반복 노출을 통해 형성된 결과일까? 이 지점에서 ‘좋아서 반복되는 것인지, 반복되기 때문에 좋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취향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지에 따라 상당 부분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반복 노출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기획된 마케팅과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형 기획사의 적극적인 홍보 전략, SNS와 유튜브를 통한 바이럴 콘텐츠, 그리고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시스템은 특정 음악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중은 자신이 음악을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노출된 음악을 소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구조에 또 다른 변화가 더해지고 있다. 바로 AI의 발전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실제 음악 제작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사례에 따르면, 과거에는 영화음악 감독이 여러 명의 어시스턴트 작곡가에게 각각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요청한 뒤, 그 결과물을 취합하고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Suno와 같은 AI 도구를 활용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 아이디어를 빠르게 생성하고, 그 중에서 원하는 방향에 맞는 결과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차원을 넘어, 창작의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인간 작곡가가 음악을 직접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AI가 다양한 가능성을 생성하고, 인간은 그 중에서 선택하고 조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창작의 주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듣게 되는 음악은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할까? 만약 AI가 생성한 수많은 음악 중에서 산업 구조와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음악이 선택되고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시스템이 만들어낸 음악’을 소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작곡가의 역할 역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음악을 직접 만들어내는 존재였다면, 앞으로는 AI가 제시한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선택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이는 창작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확장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음악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음악을 소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에는 산업 구조, 미디어 환경, 그리고 AI와 같은 기술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가치를 단순히 이러한 시스템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좋은 음악’이라고 믿고 있는 기준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조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도달했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앞으로의 음악과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